
1. Om MahAsena mahomsena jAtAya namah 옴 마하세나 마홈세나 자따야 나마하
마하세나의 눈부심으로부터 나온 자[스칸다, 신성한 힘들의 사령관이 바사나, 아수라의 욕망들과 기억들을 무찔러서 마음을 내적 참나로 돌린다.]
2. Om Sri RamanAya namah 옴 슈리 라마나야 나마하
[가나파티 무니에 의해 젊은 수도자에 주어진 그리고 지금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이름은 우리에게 바가반이 순수한 자각인 참나에서 기뻐했다는 것과 그의 메시지는 타고난 선함에서 그러나 악함이 아닌, 타고난 진실에서 그러나 거짓이 아닌, 타고난 사랑에서 그러나 미움이 아닌, 타고난 평화에서 그러나 갈등이 아닌, 라마니야- 희열이나 아름다움의 경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내적인 것이 외적인 것을 포용하며 초월한다. 그러므로 내향성이나 내적인 참나로 향하여 돌아섬은 영혼을 온전한 전체로 회복시키며 순수한 명상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일에서도 기쁨을 발견하게 한다.]
3. Om GuravE namah. 옴 구라베 나마하
[삿구루는 스스로 빛나는 태양과 같으며 내적인 빛인 참나와 같다. 참자각-참희열과 완전히 같아진 그는 그의 가르침의 효력이 전 우주적이기도 하며 참나로 향하도록 제자를 이끄는데 유례없이 효과적이기도 하다.]
4.Om Akhanda samvidAkAraya namaha 옴 아칸다-삼비다-까라야 나마하
전체인 깨어지지 않는 참자각의 화신[그는 그의 존재와 우주적인 참존재 사이에, 그의 삶과 영원한 삶 사이에 어떤 분리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세상을 아는 자가 아니다. 그는 “나,나 I, I"로서 스스로 깨어있는 세상 자체이다.]
5. Om MahoujasE namaha 옴 마호우자세 나마하
위대한 참빛[그는 은총으로 작용하는 참자각의 빛이며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스스로에게로 이끈다. 왜 그의 존재를 스승, 제자 그리고 가르침 또는 아는 자, 앎, 그리고 알려진 것으로 나누느냐? 그는 전체인 깨어지지 않는 참자각, 하나인 참실재이다. 참아버지는 참어머니 안에 있으며 두분은 참아들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참아들은 참자각의 중심으로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상 속에 있다. 이 마호우자세 안에, 이 생생한 밝음 안에, 참아버지와 참어머니는 둘다 그들의 온전함 속에 있으며 아들은 다양한 역활에 기뻐한다. 하늘과 땅은 하나의 유일한 존재에게로 녹아든다.]
6. Om KAranadbhavAya namaha 옴 까라노 - 바바야 나마하
그의 탄생이 목적이 있었던 자[이 아이는 과거의 카르마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인간 삶을 회복시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신성한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단지 목적론적으로만 설명되어질 수 있다. 현재 속으로 흐르며 미래를 야기하는 과거로서의 시간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시간 없음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과거보다 미래의 더 나은 인간과 그래서 더 나은 신성을 창조하기 위해 참 자각으로서 시간 속에 영원히 흐르고 있다.]
7. Om JAgathitAvatAraya namaha 옴 자갓-히따-바따라야 나마하
그의 출현이 세상의 안녕을 위한 자[카라나, 그가 태어났던 목적은 세상의 안녕과 구원이다. 바가반은 아바타르스에 대해 이 연을 갖는다. “다르마(법)가 기울고 악이 지배할 때, 너는 악을 무찌르고 다르마(법)를 회복시키며 덕이 있는 자들에게 강함을 주며 땅의 생명을 새롭게 한다.그런 환영적인 형상에서 너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결국 누구인가?” 신화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게임은 이제 국한되게 된다. 인간 아이의 신성은 신성한 장소에 태어나지며 수세기의 전통에 의해 적절히 그리고 잘 준비되어져 교대로 깨달음을 얻어서다르마의 율법을 다시 세우고 세상의 안녕을 책임진다. 아바타는 목샤-시디(사람들 곁에서 해방의 성취)와 자같 히땀(세상의 안녕)을 돕는다. 바가반은 이들 목적 둘다를 수행하며, 이 둘은 참으로 서로가 도움이 된다.
8. Om Sri BhaminAtha sthalattitAya namah 옴 슈리 부미나타 스탈로뜨티따야 나마하
부미나타 또는 띠루메니마타의 성스러운 곳에서 나왔던 자[띠루루주지에서 쉬바의 이름은 “ 우주의 중심“이다.
9. Om ParAsarakulattamsAya namah 옴 빠라샤라 꿀로뜨땀-사야 나마하
파라사라 쿨라의 왕관의 보석[파라사라는 아그니를 최고의 신으로 숭배했던 마하리쉬였으며 바가반은 아루나찰라에서 최고의 신의 상징인 불의 얼음기둥을 보았다. 그가 탄생한 장소와 가족은 둘다 의미심장하다.]
10. Om SundarArya tapah phalAya namah 옴 순다라야-따빠하 팔라야 나마하
순다라 아이어의 고행(속죄)의 결실[순다라,알라그와 라마나의 세 단어는 모두 아름다움과 달콤함을 의미한다. 훌륭한 아버지와 훌륭한 어머니는 카라녿바바를 위해서 조차 필요해졌으며 그들은 그런 아이를 가질 만한 장점을 가졌음에 틀림이 없다.]

11. Om Kamaniya suchAritrAya namah 옴 까마니야 수짜리뜨라야 나마하
탁월한 행위를 지닌 매력적인 사람[아이처럼, 시선을 붙잡는 아름다운 용모, 빛나는 눈빛, 달콤한 말과 항상 웃고 있는 바가반은 온 이웃들이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12. Om SahAyambA sahAyavatE namah 옴 사하얌바 사하야-바떼 나마하
모든 이의 도우미, 어머니 신성의 도움을 즐겼던 자[사하얌바는 띠루주지의 여신의 이름이다. 한번은 아이 때 바가반은 분개하여 그의 집을 떠나 반대편에 있는 사원으로 달려가서 어머니의 상 앞에 앉았다. 그 순간 그는 조용해졌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기쁨의 전율을 느꼈다.]
13. Om sonAchala mahalina mAnasAya namah 옴 쇼나짤라 마호-리나 마나사야 나마하
그의 마음이 아루나찰라의 눈부심 속에 녹아들었던 자[아동기 때부터 바가반은 아루나찰라의 이름, 빛, 영광에 사로잡혔다.]
14.Om SvarnahastakAya namah 옴 스바나-하스따까야 나마하
황금의 손을 가진 자[행위에서 빈틈이 없으며, 게임들에서 승리를 하며, 그가 맡은 모든 일에서 운이 있었던 바가반은 그가 접촉한 무엇이든지 참자각과 참희열의 황금으로 바꾸었다.히라냐바후를 쉬바와 비교하라.]
15. Om Srimad dwAdasAnta mahAsthalE labdha vidyadayAya namah 옴 슈리맛 드와다-샨따 마하-스탈레 라브다-비됴-다야야 나마하
가장 성스러운 드와다싼따 마하스탈라(마두라이)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자[전기,지리학 그리고 신화의 적절한 묶음인 스투티에서 세 장소들이 중요하다: 띠루주지 마두라이 그리고 띠루반나말라이. 그러나 최고의 극적인 중요성은 쉬바의 운동경기들의 개최지(띠루-빌라야달)인 마두라이에 붙여진다. 왜냐하면 영원이 시간속으로 들어갔으며 쉬바-샥티가 인간 역사에 시작되었으며 바가반의 삶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여기 미낙쉬-순다라의 사원의 그늘 아래에서이기 때문이다. 어린 벤까따라만(아마 1896년 7월 16일 화요일 수크라빠크샤, 싸쉬띠) 에게 왔던 깨달음은 너무 갑작스럽고 놀랄 만하며 너무 완전하며 오래 지속적이어서 그것은 인간 역사에서 붓다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어남이나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의 죽음과 나란히 견줄 만하다. 초까빠 나이껜 거리 11 번지는 성지 순례의 장소가 되었으며 다가올 수세기 동안 수 백만명을 이끌 것임에 틀림이 없다. ‘슈리맏 드와다샨따 마하스탈라‘라는 어구는 마두라이,즉 소마순다라로서 쉬바와 미낙쉬로서 샥티가 그들의 게임을 신성하게 놀았던 곳인 이 마을에서 이 세상을 바꿀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해 준다. 인간 몸에 물라다라부터 사하스라라가까지 여섯 개의 차크라(요기 중심들)위에 그리고 너머에 여섯 개의 더 미묘한 차크라가 있다. 이것들의 최고인 열두번째이며 마지막인 드와다샨타는 마두라이의 가장 오래된 성스러운 도시와 동일시된 우주적 질서 속에 있다. 전설과 문학, 성자들과 시인들의 삶들이 엄청나게 증거하듯이, 샥티가 가장 힘있고 활동적인 곳이 여기 이 뻬따(왕좌)에서다. 마하샥티가 인간의 몸을 갖기로 스스로 선택했을 때 그녀는 마하비댜(최고의 지식)로 이 어리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16살 소년에게 내려왔던 것은 아주 적절했다.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띠루주지에서 만났을 때, 마두라이의 문화적 메트리스는 참진리에 소년의 갑작스런 깨달음을 위한 적절한 배경을 제공했다.]
16. Om MahAsakti nipAtEna prabuddhAya namah 옴 마하-샥티 니뺘떼나 프라븓댜야 나마하
최고의 힘의 하강으로 인해 깨달음이 완전하고 영원했던 자[마하샥티 니빠따하-그것은 인간의 상승이 아니라 신성의 하강이다. 우파니쉐드는 “아트만이 선택한 그, 홀로 그만이 아트만을 얻는다.”라고 말한다. 선택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마하 샥티의 것이었으며 그는 그녀의 은총의 통로가 되어야 했다.]
17. Om ParamArthavidE namah 옴 빠라마르타-비데 나마하
최고의 가치를 깨달은 자, 궁극의 실재를 안 자[나(I)의 의미는 존재-자각-희열, 나와 참나의 정체성이라는 것, 이것이 바가반이 깨달았고 가르쳤던 최고의 진리이다. 그가 우파디스(한정과 분리의 속성들)를 초월했으며 우주적 참자각으로 완전한 정체성을 얻었던 1896년 7월에 그 날로부터, 그는 영원한 참존재의 깨어지지 않는 희열을 즐겼다. 사람이 사람이기를 그치는 것 없이 신이 되었다. 평범한 학생이 마더 샥티에 의해 선택되어 영적 에너지의 영원한 근원이며 창조적인 선함의 살아있는 중심인 쿠마라가 되었으며 그것으로 직분을 다하였다.]
18. Om TivrAya namah 옴 띠브라야 나마하
맹렬히 활동하는(둔한 것과는 거리가 먼)자[빠라마르타비타, 최고의 참진리를 아는 자는 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맹렬히 활동한다.빨리 회전하는 꼭대기의 고요함 처럼, 그의 조용함은 매우 명백하다. 갸나와 접촉한 이바 즉 개별적 영혼은 박티(신의 사랑)와 카루마(연민)으로 “날카로와”지며 창조적으로 살아있게 된다. 어린 소년은 모든 인류의 궁극의 목적인 목샤의 상징, 아루나찰라, 지상에서 그의 마지막 지리적 목적지를 향하여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19. Om PitrupadAnveshinE namah 옴 삐트르-빠단베시네 나마하
참아버지의 거처, 참아버지의 현존을 찾는 자[이미 참아버지와 함께, 이제 마음은 몸을 그것으로 이끈다. 밖의 대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드리며 내적인 참나를 찾는 것은 참아버지의 거처를 찾는 것이다. “나는 나의 참아버지를 찾아 갑니다.” 라고 바가반은 마두라이를 떠날 때 썼었다. 아루나찰라에서 쉬바는 샥티를 자신에게로 거두어드리고 순수한 참존재-참자각으로 서있다. 반가반은 아루나찰라에 도달한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그의 헌신자들의 이야기이며 온 세계의 이야기이다.
20. Om IndumoulinA pitrumatE namah. 옴 인두-마울리냐-삐트르마떼 나마하
초승달 모양의 왕관을 쓴 신의 아들[쉬바는 찬드라쎄까라이다.]

21. Om PiturAdEsatah sana sailam prAptAya namah. 옴 삐뚜라-데샤타하 쇼나-쉐일람 쁘랴쁘따야 나마하
그의 참아버지의 명령에 아루나찰라에 도달했던 그[바가반의 떠나는 편지에 “ 나의 참아버지의 명령에 따라”라고 써있다. 은총의 하강처럼, 아루나찰로의 여행은 운명지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22. Om TapamayAya namah 옴 따포-마야야 나마하
모든 고행이었던 자,전 존재가 고행이었던 자[이 당시에, 즉 마두라이에서 티루반나말라이까지 여행할 때, 바가반은 초월의 상태에 있었다. 그의 온 몸은 1896년 9월1일 아루나찰레스와라의 현존에 도달할 때까지 타는 듯한 감각(타파스)를 느꼈었다.]
23. Om UdAsinAya namah 옴 우다시나야 나마하
높이 위에 앉아있는 자[그는 이제 이 세상 너머에서 접촉함 없이 그리고 영향 받는 것 없이, 그러나 내적 행복을 내뿜으며 순수한 참존재에 거주한다.]
24. Om MahAyoginE namah 옴 마하-요기네 나마하
위대한 요기, 그의 전 존재가 참나 안에 있는 자[요가의 정점은 참나로서 완전히 거주함이다.]
25. Om MahatsAhAya namah 옴 마호트-샤하야 나마하
지극히 열심인 자[갸니는 아무 노력도 없으며 아무 피로도 없다. 그의 열정, 그의 에너지는 희열적 평화의 방사이다.그의 참자각은 에너지 자체이며 태양과 같이 항상 빛나고 있으며 선행으로 지치지 않는다.]
26. Om KusAgradhiE namah 옴 꾸샤그라-디히예 나마하
가장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자[참나로 녹아든 지성은일반적이며 에고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항상 희열에 있다.]
27. Om santa sankalpa samrambhAya namah 옴 샨따-싼깔빠-삼람바야 나마하
조용히 그리고 욕망들의 혼란 없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의 행위들이잘 시작되고 잘 행해지는 자[욕망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갸니의 고요한 마음은 깨끗한 거울처럼 참실재를 반영하며 확신과 명확함으로 행동한다.]
28. Om Susandrse namah 옴 수싼드르쉐 나마하
깨끗한 상서로운 통찰력을 가진 자[그는 다양한 현상적 세상 뒤에 있는 불가지의 것,즉 실재만을 본다.]
29. Om savitre namah 옴 사비트레 나마하
참자각의 태양, 갸나바누[창조자이며 유지자이며 땅을 드러내는 자]
30. Om SthirAya namah. 옴 스티라야 나마하
확고하며 움직이지 않는 자[모든 사물들이 움직이며 살아가는 반면에 바가반은 고요한 참존재이다. 그는 아찰라 즉 순수한 참존재-참자각의 고요이다.]

31. Om Tapah kshapita sarvAngAya namah 옴 따빠하 끄싸삐따-싸르반가야 나마하
고행으로 그의 온 몸이 줄어들었던 자[띠루반나말라이에서 처음 몇 달동안 반가반은 완전히 그의 몸을 잊어버렸다. 그는 씻지도 않고 식사도 없이 며칠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피부와 뼈만 남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아루나찰레스와스의 큰 사원에서 6개월 그리고 구루무르탐과 그 옆의 망고 동굴에서 2년은 몸의식 없이 깊은 사마디 속에서 보냈다.]
32. Om PhullAmbuja vilachanAya namah 옴 플람-부자 빌로짜나야 나마하
활짝 핀 연꽃처럼 밝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자[이 깨어지지 않으며 지속적인 사마디에서 몸은 경시되고 굼주리고 말라들었을 때 얼굴은 서늘하고 매력적이었으며 눈은 빛남에 사로잡혔다. 몸의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닐 만큼 말라들었다. 그는 단지 빛나는 얼굴에 두눈이었다. 플람부자 빌로짜나하란 어구는 또한 눈을 통해 빛나는 심장-연꽃을 활짝 피운 자를 의미할 수 있다. 그의 온 심장이 눈 안에 있었다. 내적인 빛남은 그의 눈의 창을 통해 빛났다.]
33. Om ChandrikAsita hAsa sri manditAnana mandalAya namah 옴 짠드리까-씨따-하싸 슈리-만디따나나 만달라야 나마하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서늘한 달빛 같은 미소에 의해 빛났던 자[미소가 달의 서늘한 빛남 처럼 부드러웠고 빛이 났었다. 눈에 의해 빛나는 얼굴은 미소에 의해 서늘했다. 희열적 심장의 고요는 조용하고 밝고 아름다운 얼굴에 반영되었다. 바라보는 자들은 그런 은총의 눈낄과 밝은 미소, 달빛 같은 서늘하고 조용한 미소에 황홀해 하였다.]
34. Om ChatavAtyAm samAsinAya namah 옴 쭈따-바땸 싸마-시나야 나마하
망고 동굴에 조용히 앉아있던 자[이 이름은 꿀루므르탐과 인근의 망고 동굴에 2년간 머무름을 이야기한다. 이 침묵의 기간에 그는 심오한 고요를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즐기기까지 하였다.]
35. Om CharnitAkhila vibhramAya namah 옴 쭈르니따-낄라-비브라마야 나마하
모든 환영을 파괴하는 자[그는 모든 종류의 환영을 완전히 멸했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안내를 구하는 사람들까지도]
36. Om VEda VedAnta tatvajnAya namah 옴 베다-베단따따-뜨바갸야 나마하
베다와 베단따의 내적 중요성을 이해했던 자[경전들의 정수이며 핵심, 근원이며 목적인 바로 찌다난다, 즉 참자각-참희열을 알고 즐겼으며 스스로 그것이 되었던 그는 이제 경전들이 단지 지적하기만 한 실재를 완전히 구현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37. Om ChinmudrinE namah 옴 찐-무드리네 나마하
침묵으로 최고의 지혜를 부여하는 자[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는 그것(THAT)은 단지 모우나 즉 완전한 침묵에 의해 가르쳐질 수 있다. 슈리 바가반의 침묵의 현존(The SILENT PRESENCE)은 그의 최고의 가르침이었다.]
38. Om TrigunAtigAya namah 옴 뜨리구나-띠가야 나마하
세가지 구나들을 초월한 자[에고와, ‘나(I)’감각이 없으며 순수한 우주적 참자각인 바가반은 지반묵타이며 쓰티다쁘라자이며 구나띠따이다. 그의 이 본성과 존재가 니르비까라 치다까싸 즉 모든 특성들을 초월한 순수한 참자각의 변할 수 없는 하늘이다.]
39. Om VirapAksha guhAvAsAya namah 옴 비루빠끄사-구하-바사야 나마하
비루빠끄사 동굴에 거주하는 자[여기에서 바가반은 1900년-1916년까지 약 16년간 살았다.비루빠끄사는 세 번째 초월적 눈을 가진 신인 쉬바의 이름들 중 하나이다. 이 단어는 또한 심장-동굴을 의미한다. 이 시기동안 바가반의 방사가 가장 밝게 빛났으며 가나파티 무니는 그를 바가반 마하리쉬라고 부르며 인사했다. 현존의 힘이 너무나도 명백하여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면, 그것은 구름이 항상 같게 빛나고 있는 태양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태양을 볼 수 있는 구름 없는 하늘은 헌신자 자신의 가슴이다.
40. Om VirAjadachalAk?taye namah 옴 비라자다-짤라끄르따예 나마하
빛나는 고요의 형상인 자[비루바끄사 시기 동안 남자들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원숭이들과 다른 동물들조차도 바가반의 현존 안에 희열적 고요에 고정되어 서 있었다. 아루나찰나는 “얼어 붙은 불”이며 사람들은 바가반 속에서 빛남과 고요의 이 혼합을 보았다.]

41. Om uddipta nayanAya namah 옴 우드디쁘따-나야나야 나마하
매력적인 눈낄을 가진 그[그의 가슴으로부터 샘물처럼 솟아나는 은총은 저 매력적인 눈들을 통해서 흘러내렸다. 어구는 또한 ‘영적인 길을 잘 밝히는 뛰어난 안내자, 다른 사람들을 참가슴의 항상 현존하는 훈훈함으로 안내하는 자를 의미한다.]
42. Om ParnAya namah 옴 뿌르나야 나마하
완전한 자[몸-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에고의 어떤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는 순수한 참자각의 완전한 상태에 확고히 서 있다. 보름달이나 구름 없는 빛나는 하늘과 같이, 그는 그 자신의 본래 타고난 광채 속에서 빛나고 있다.]
43. Om RachitAchala tAndavAya namah 옴 라찌따-짤라-딴다바야 나마하
고요의 춤을 추는 댄서[나따라자의 고요한 발과 같이, 순수한 참존재의 상태, 참자각의 희열은 휴식과 활동 둘다에서 기쁨에 넘쳐 떨리는 스푸라나이다. 아루나찰라로서의 쉬바는 이 고요의 춤의 마스터이다.]
44. Om GambhirAya namaha 옴 감비라야 나마하
거대한 수직적인 규모의 장대함, 깊고 높음[갸나 감비라는 “파도에 의해 물결지게 하는 표면을 갖고 있는 큰 바다와 같은 깊이의 고요”,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산과 같은 확고함이다.]
45. Om ParamAchAryAya namah 옴 빠라마-짜르야야 나마하
최고의 스승[최고의 실재의 스승, 갸나 구루, 스승들 중의 스승]
46. Om SuprasannAya namah 옴 수-쁘라산나야 나마하
그의 현존이 순수한 은총인 자[은총, 즉 쉬바의 볼 수 있는 나툼을 구현한 자. 쉬바의 은총은 삿구루의 형태를 취한다.]
47. Om AbhayapradAya namaha 옴 아바야-쁘라다야 나마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를 주는 자[두려움은 “또 하나의 무엇”의 현존으로부터 온다. 이원성의 감각이 파괴되어질 때, 모든 창조물이 갖고 있는 정체성, 즉 모든 존재들의 하나임이 깨달아질 때,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느냐?]
48. Om DakshinAsya nibhAya namah 옴 다끄시나샤-니바야 나마하
다끄시나무르띠와 동등한 자[다끄시나무르티의 현대의 화신, 바가반은 침묵을 통하여 가장 심오한 지혜를 가르칠 수 있는 모우노빠데싸의 스승이었다.]
49. Om DhirAya namaha 옴 디라야 나마하
두려움을 모르며 영향을 받지 않는 자[디라뜨바는 따밀어 ‘우란’, 즉내적 강함에 해당한다. 순수한, 고요한, 확고한 자각은 어떤 변화, 어떤 방해, 어떤 움직임도 모른다. 그런 흔들릴 수 없는 확고함, 구름이 끼지 않는 청명함, 영웅다운 자기-의지가 바가반을 나타낸다.]
50. Om DakshinAbhimukhAya namah 옴 다끄쉬나비-무카야 나마하
남쪽을 보고 있는 자[ 바가반이 지금 라마나 켄드라 델리의 성소 안에 앉아 있는 듯이, 우연히도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 그는 남쪽을 보고 앉아 있었다. 다끄쉬나는 오른쪽 편이며 그래서 능숙하고 활동적이며 힘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쪽 편에 있는 영적 심장은 신과 구루와 참나의 집이다. 스승은 남쪽으로 바라보고 제자는 북쪽으로 바라 보아서, 두 심장들이 만날 때, 은총의 흐름은 빨라지게 되며 시간과 공간은 비 이원의 희열 속으로 녹아든다.]

51. Om SvarAje namah 옴 스바라제 나마하
자율적으로 스스로-빛나는 자[그는 유일한 참존재이므로 참존재의 왕국의 임금이다. 스바라지는 자기-의지이며 자기-자각이며 자기-통제이며 베다에서 인간의 이상향으로 선언된 그리고 간디의 “힌두 스바라지”에 구실이 된 내적 또는 통합적 자기-규율이다. 그것은 단지 다른 사람에 의한 통제에서 자유나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원성의 감각에서 자유이다.
52. Om Maharsaye namah 옴 마하르샤예 나마하
최고의 참진리를 깨달았으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위대한 보는 자(Seer)[ 이 이름은 유명한 학자, 바시쉬타 가나파티 무니에 의해 바가반에게 (브라마나 스와미로 알려졌던 젊었을 때) 주어졌다. 가나파티 무니는 유명한 판디다 파리샤드에 의해 까뱌깐타로 인정받고 있었다. (웨 우 웨에 의한 책들과 다른 서양 학자들은 슈리 라마나를단순히 “마하리쉬”라고 말한다.)]
53. Om Bhagavate namaha 옴 바가바떼 나마하
바가의 스승; 신 또는 신과 같은 사람[바가는 아이쓰바랴(부유), 빠라까르마(영웅다운 용기)끼르띠(명성), 영광, 갸나와 바이라갸(무감동)의 절정을 상징한다. 이 이름 역시 가나파티 무니에 의해 주어졌다. 방문객과 일반적 대중들은 그를 마하리쉬라고 부르며 안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를 바가반이라 부른다. 바가반이란 단어는 또한 단지 목격자로서 세상 과정을 지켜보는 자을 의미한다.]
54. Om IdyAya namah 옴 이댜야 나마하
칭송을 받을 만한 자, 그에게 명예를 주는 저들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자[멀리 그리고 가까이 있는 많은 헌신자들이 그에게 왔으며 그의 현존에서 위안과 힘과 깨달음과 평화 그리고 기쁨을 발견했다.]
55. Om BhamavidyAvisAradAya namah 옴 부마-비다 비샤라다야 나마하
부마-비다에 정통한 자[부마는 땅이며 브라마는 다른 것을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순수한 나(I AM)의 희열적 경험인 참존재-참자각의 이름이다. 이것이 찬도가 우파니샤드에서 성자 나라다가 영원한 젊음인 싸나타-쿠마라에게 찾아가 얻었던 최고의 지식이다. 남인도의 시들과 민속에는 영원한 젊음 수브라마냐, 무루가가 평범한 사람에게 조차 이 최고의 지식을 전한다. 시인들과 사람들이 슈리 라마나에게서 항상 미래을 드러내는 여섯-얼굴을 가진 신의 현대적 나툼을 본다면, 이것은 그들이 그가 특별한 일를 수행하며 모든 각양각색의 사람에게 최고의 지혜를 희석되거나 왜곡함 없이 전해줄 혁명적인 임무를 수행할 준비와 능력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참진리는 가장 널리 일반인에게 퍼져있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56. Om VimalAya namah 옴 비말라야 나마하
흠이 없는 자[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것처럼 참나를 가리는 우리 인간 본성에서 흠들은 에고에 의해 던져진 어두운 그림자들이다. 완전히 에고 없음인 바가반은 모든 흠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자각으로 빛난다.]
57. Om Dirgha darsinE namah 옴 디르가-다르쉬네 나마하
멀리(원시의) 보는 자[시간과 공간 너머을 보는 초월적 시각을 가진 자; 현상을 통해서 보고 참실재를 아는 자]
58. Om AptAya namaha 옴 아쁘따야 나마하
가까이 그리고 사랑하는 자[자신의 가슴에 거주하며 항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나 친척; 아트마반두; 나의 참나]
59. Om RujumArga pradasakAya namah 옴 르주-마르가-쁘라다르샤까야 나마하
곧바로 직접적인 길을 보여주는 자[그는 나(I), 우리의 각자의 안에 있는 아트만이며 그러므로 아쁘따, 가까이 그리고 사랑하는 목표이며 길이며, 여행이며, 안내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므로 그는 우리를 결코 잘못 인도할 수 없다. 자기탐구를 통해 갸나를 추구하는 자, 바가반을 따르는 자는 길을 잃지도 이탈하지도 지혜과 기쁨에 성장을 멈추지도 않는다. 바가반의 길은 수직의 길이며 태양을 향한 길이며 안으로 향하는 길이며 자유와 책임 같은 것에서 완전한 성장을 의미한다. 그런 성장에서 어느 누구도 길을 잃을 수 없다. 수평적 움직임은 어떤 방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직적 움직임, 안으로 향하는 움직임은 상대적 자각을 유지하는 깊고 높은 순수한 자각이다. 바가반을 따르는 자들는 실재에 뿌리를 두며 참실재의 태양과 이야기를 하는 거대한 나무들과 같이 성장한다. 그들은 각양각색의 방향으로 달리는 비굴한 아첨꾼이 아니다. 영원한 태양, 내적 구루에게로 돌아선 그리고 자신의 땅, 시간, 장소, 그리고 환경에 뿌리를 둔 사람은 기쁨의 힘 안에서 그리고 기쁨의 힘을 통해 곧바로 자란다. 그런 사람은 축복의 말들을 이야기하며 광채를 퍼트린다. 마치 태양을 마주보며 그림자를 뒤에 떨구는 것처럼. ‘밖으로는 침울한 장막이더라도, 모든 구름의 안쪽 반은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구름을 돌려서 항상 그들을 안으로 향하도록 있는 힘을 다하게 하여 내면을 보여준다. 어둠은 단지 영원한 빛의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결핍처럼 보여질 뿐이다.’]
60. Om SamadrsE namah 옴 사마드르쉐 나마하
단지 같음, 하나임, 전체만을 보는 자, 고요한 평등한 눈을 갖고 보는 자[싸마는 심지어 구식이 아닌, 균형이 맞은,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싸마드르끄는 사물을 하나의 유일한 자각의 다양한 나툼으로 간주한다. 그는 이름이나 형상이 아닌, 하나인 존재, 실질을 본다. 그는 갈등의 어떤 쪽도 취하지 않는다. 그는 이원성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항상 고요하며 공평하며 모든 것을 이해한다.]

61. Om SatyadrsE namah 옴 사땨드르쉐 나마하
참진리를 보는 자, 스스로 있는 것을 보는 자[그는 이 변화하는 우주에서 영원한 요소를 본다. 아이가 출판물을 훑어볼 때 아이는 글자들을 인식되지만 의미는 빠뜨린다. 엄마는 한 눈에 의미을 알아채며 낱낱의 글자들은 무시한다. 또한 그것들을 아이를 위해서만 그리고 아이와 함께 주의를 주어서 알아차린다. 글자들은 거기에 있다. 그것들은 참이며 어떤 사땨를 가진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땨샤사땨, 의미, 즉 글자들 뒤의 영혼은 아니다. 바가반은 현상들 뒤의 실재를 보았다. 그러나 사랑스런 엄마와 같이 그는 또한 현상들, 반은 삿을 감추고 반은 삿을 드러내는 사땨에 주의를 주어서 알아차렸다. 17번째 이름 빠라마르타비타는슈리맏 드바다샨따 마하스탈레 랏다 비됴다와 마하샥티 니빠떼나 쁘라븟다가 단지 참나, 내적영혼, 우주의 전체 의미, 순수한 참자각만을 보았고 다른 사람들이 보았던 것을 볼 수 없었던 때인 어린 시절의 사진의 느낌을 나타내었다. 이제, 비루빠끄사 동굴의 시기에 그는 경전을 읽으며 사람들과 그들의 수준에서 이야기하며 의미를 전달할 글자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래서 삿, 즉 전체의 진리뿐만 아니라 사땨 즉 홀로 다른 사람들만이 이해했던 그것의 현실적이며 감각적이며 정신적이며 지성적인 면들도 본다.그래서 그녀의 아이에게 읽는 기술을 가르치는 좋은 엄마와 같이, 그는 사람들을 점차로 자각의 높은 수준까지 안내하며 그들을 사땨에서 삿 안에 완전한 사땨까지 자라는 방법을 가르친다. 사마드르끄와 사땨드르끄는 서로 보완적인 용어들이다. 모든 사땨는 하나인 삿의 완전한 나툼이다. 바가반은 이 빛에서 모든 사땨를 보았으며 그래서 하나인 사땨와 다른 하나로서 구별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전체인 참실재의 전체적인 나툼으로서 보았다. 그는 초승달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는 우리를 “한 순간 부유함에서 영원히 가난”하게 만드는 어떤 불쾌한 비교도 하지 않았다.] 62. Om Satyaya namaha 옴 사땨야 나마하
모든 사땨인 자, 참실재를 구현한 자[따밀어 메이는 몸과 진리 둘 다를 의미한다. 무르가나르는 “설명 없이 그는 단순한 진리(그의 맨 몸)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바가반은 그의 육체적 현존만으로 진리를 드러냈다. 빠라마르타 삿, 초월적 참존재는 우리의 육체적 눈 앞에 뱌바하라사땨, 상대적 진리로서 여기게 현존한다. 그의 몸은 참자각-참희열인 참존재, 즉 삿을 구현하였다.]
63. Om PrasAntAya namah 옴 쁘라샨따야 나마하
고요한 평화로 가득한 자, 고요함의 화신[모든 심란함과 불만족에서 자유로운, 그는 모든 평화이며 고요함이다. 그의 현존은 고요함을 퍼트린다.]
64. Om Amita vikramAya namah 옴 아미따-비끄라마야 나마하
무한한 승리자, 헤아릴 수 없는 용기를 가진 자[평화나 샨띠는 실재의 내적 또는 자각의 한 면이며 힘이나 샥티는 실재의 외적 또는 활동적인 한 면이다. 완전한 평화는 무한한 힘이다. 참존재의 힘과 참자각의 에너지는 고요함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움직임에서 보여질 수 있다. 쁘라산타는 아미따 비끄라마이다. 아주 높은 물기둥의 꼭대기 표면은 고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요함은 엄청난 힘을 간직하고 숨긴다. 바가반의 살아있는 평화는 활동적인 힘을 오게 하며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만든다.]
65. Om SukumArAya namah 옴 수꾸마라야 나마하
항상 신선한, 항상 맑은, 항상 향기로운, 항상 젊은, 보기에 즐거운 참아들, 무루가[쁘라나바는 항상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옴은 갸나, 즉 영원히 신선하며 자발적이며 창조적이며 어떤 접촉에 오염되지 않으며 접촉하는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자각의 상징이다. 아름다움과 젊음과 미래의 신인 무르가는 햇빛과 그것의 근원, 항상 신선함과 티 없이 맑음 둘다인 강가의 영원히 새롭게 하는 결합에서 태어난다. 아미따 비끄라마, 즉 항상 승리하는 전사와수꾸마라, 즉 용기와 지혜로 가득 찬 항상 젊은 영웅은 모든 순간에 행위를 즐긴다. 그는 미래를 즐겁고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맞이하기 때문이다.]
66. Om SadAnandAya namah 옴 사다난다야 나마하
그의 희열이 영원히 새롭게 하는 자[태양, 강가, 빛남, 활력, 움직임, 기쁨, 순간에서 순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변화하는 희열로서 나타나는 참존재인, 그는 사됴자따이며 그래서 사다난다이다.
67. Om Mrudu bhAshinE namah 옴 미두-바쉬네 나마하
그의 말투가 달콤하고 부드러운 자[달빛은 고요하고 서늘하지만 생기가 없다. 강가 물 위의 햇빛은 밝고 서늘하고 달콤하며 떨림이 있으며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희열의 속삭임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바가반의 말투는 깊은 침묵의 표면 위에 부드러운 거품이었다.
68. Om DayArnavAya namah 옴 다야르나-바야 나마하
큰 연민의 바다[바가반의 은총은 그에게 매우 접근하기 쉽게 만든다. 쉬바의 은총은 무르가로 구현된다. 그는 쉬바의 장엄함의 눈에 보이는, 떨리는, 경배할 만한 빛이다. 무서운 것과 장엄한 것이 이제 보기에 즐거우며 가정적이며 다루기 쉬운 인간 형상으로 우리에게 이용될 수 있다. 바가반 마하리쉬는 또한 말투가 부드러우며 연민으로 흘러넘친다. 태양은 잡혀서 길들여져 연민의 바다에서 태어난 불의 불꽃인, 아그니로 가정으로 오게 되었다.]
69. Om sri-sonachala hrudbhata SkandAsrama nikEtanAya namah 옴 슈리-쇼나짤라 흐리드부따-스깐다-슈라마 니께따나야 나마하
황금의 언덕의 심장인 샨다스라맘에 거주하는 자[쇼나짤라, 황금의 언덕은 아루나찰라의 이름들 중 하나이다. 39 번째 이름은 비루빠끄사 구하바사이다. 30개 이름들은 바가반이 동굴에서 16년동안 살았을 때 그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비루빠그사는 쉬바의 이름이다. 참된 비루빠끄사 동굴은 무한하며 초월적인 참존재가 항상 거주하는 오른 편의 영적 심장이다. 쉬바 또는 삿은 실재이며 참존재-참자각이며 그의 중심은 모든 살아있는 것과 모든 물질의 입자에 모든 곳에 있으며, 그의 범위란 어디에도 없다. 사땨는 진리이며 그의 중심은 삿 순수한 참자각에 있으며 그의 범위는 상대적인 실재에, 시간과 공간에 있다. 이 사땨의또 다른 중심은 육체적이며 만질 수 있는 개별적인 인간 심장이다. 삿과 사땨 둘은 명백히 서로 다르지만 명료하고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동일하다. 40편의 시들에대한 부가물 중 20번째를 보라. 삿은 이제 사땨로 구현된다. 비루빠끄사 또는 쉬바는 스칸다로서 구체적인 형상을 가졌다. 초월적인 것이 수꾸마라로서, 강가 위의 햇빛으로서, 땅 위의 불로서, 사람들 가운데 남자로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스칸다로서 쿠마라는 이제 스칸다스라맘,즉 아루나찰라의 심장, 참아버지 쉬바의 바로 그 구현체이며 그래서 이 우주의 중심이며, 순수한 참자각 자체인 그 산에 산다. 스칸다로서 바가반은 여기에 6년 동안 살았다(1916-1922). 많은 신화를 만드는 저들을 위한 , 스칸다스라맘의 이름과 그것의 의미들은 사실 평범한 사람, 칸다스와미, 강하고 신실한 한 헌신자로부터 왔는데, 그는 정글을 깨끗이 정리하고 적당한 구조물을 세우는 힘든 작업을 하였다. 스칸다스라맘은 가까이에 신선한 샘물이 있는 편리한 지점이었으며 비루빠끄사 동굴보다 거주하기가 더 나은 곳이었다. 그것은 언덕(the Hill)보다 더 높았으며 더 돋보이고 마을에서 더 쉽게 눈에 띠었고 곧 안주인 같은 참어머니(the Mother)가 있는 넓고 편리하며 환대하는 아쉬람이 되었다. 스칸다스라맘에서 다음 이동은 1922년에 띠루반나말라이 마을의 관내 경계 내에 있는, 라마나스라맘의 현재의 장소로 이어졌다.]
70. Om SaddarsanapadEshtre namah 옴 삳-다르슈아노-빠데스뜨레 나마하
삿다르샨의 스승, 참진리를 드러내는 자[ 1922년 이듬해에 울라두 나르빠두(참실재에 대한 40편의 시들)가 헌신자들의 요구에 의해 지어졌다. 까뱌깐타 가나파티 무니에 의해 산스크리트로 번역된 것의 이름이 삿-다르샨이다. 이 작품에 대한 “WHO"라는 까빨리 싸스뜨에 의한 주석서와 쉬바빠라까삼 삘라이와 닥터 T.M.P. 마하데반에 의한 주석서들이 있다.]

71. Om Sadbhakta vrinda parivrtAya namah 옴 삭 박타 -브린다-빠리브리따야 나마하
참진리를 사랑하는 무리에 의해 둘러싸인 자[삿구루는 더욱더 수행자들를 끌어들렸다. 이 참된 헌신자들과 탐구자들은 아쉬람에서 그리고 그의 빈번한 기리쁘라닥쉬나 동안 그를 둘러쌌다. 그가 언덕(the Hill)의 발 아래로 와서 정착했던 그 시기에 구름 같은 탐구자들이 그를 둘러쌌다.
72. Om GanEsa muni bh?ngena sevitAnghri sararuhAya namah 옴 가네슈아-무니 브린게나 세비땀-그리-사로-루하야 나마하
그의 연꽃의 발이 꿀벌 가네사 무니에 의해 찾아진 자[벌은 어느 꽃이 가장 달콤한 꿀을 가졌는지를 알며 찾아서 꿀을 빨고 비축한다. 21살에 까뱌깐타로 유명한 학자들에 의해 인사를 받던 가나파티 무니는 완성된 수행자이며 시인이었다. 그는 바가반의 발아래 앉아 갸나의 달콤함과 빛을 얻으며 그의 산스크리트 시를 통하여 바가반을 칭송하는 노래를 만들었을 때 ,다른 학자들과 시인들도 역시 달콤함과 빛의 똑같은 근원으로 끌려갔다.]
73. Om GitapadEsa sArAdi grantha saUchinna samsayAya namah 옴 기또-빠데샤-사라디 그란타-샨찐나-삼샤야야 나마하
그의 기타, 우파데사 사라 그리고 그런 다른 작품들로 모든 의심을 쫓아 버리는 자[18장으로 된 까뱌깐타의 라마나 기타와 300개의 산스크리트 시은 가나파티 무니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른 제자들에 의해제기된 많은 문제들에 대해 답을 한 현대의 위대한 걸작이다. 그것은 많은 부분들이 완전히 독창적이며 열성적인 탐구자들을 위해 매우 형이상학적이며 실제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심오한 진리들을 단순하고 명료하고 간결한 언어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가나파티 무니가 라마나 기타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면, 바가반의 연꽃의 발에서 꿀을 마시며 노래했던또 다른 꿀벌은 무르가나르였다. 그는 우파데사 사람과 울라두 마르파두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전자는 바가반에 의해 산스크리트, 뗄구어 그리고 말라야람어로 번역되었고 후자는 까뱌깐타에 의해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되었다. 짧지만 명료하고 간결하며 가장 권위 있는 이 작품들의 특징은 열성적인 탐구자들을 곤란하게 하는 모든 솔직한 의문들을 곧바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공부를 위한 이론적이며 사변적인 사항들이 아니라 사다나와 참실재의 직접적인 경험을 위한 실재적인 안내서들이다. 그것들은 읽는 사람을 확실히 사로잡으며 ‘갸나가 까르마, 박티 그리고 요가의 기초가 되며 그것들을 초월하는, 모든 것에 퍼져있는 바탕 또는 투리야 요소라는 것’과 ‘이들 다른 방법들은 “생성becoming”과 관련이 있지만 “존재being”와 관련되는 갸나는 생성의 이 세 가지 방식들을 포함하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킨다. 바가반은 갸나의 빛으로 모든 의심의 그림자를 파괴한다.]
74. Om VarnAsrama matAtitAya namah 옴 바리나슈라마-마따-띠따야 나마하
바르나(카스트-차별들)과 아스라마(삶의 단계들)을 초월한 자[바르나와 아스라마는 몸-마음에 기초한 개념들이다. 몸-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멈출 때 이런 개념적인 체계의 규칙들과 제한들을 따르거나 벗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은 일어나지 않는다. 참실재의 경험은 모든 개념적인 차별을 끝낸다. 한계와 경계, 상승과 하강은 땅에 존재한다. 삿칫아난다의 에테르의 하늘은 하나이며 나눌 수가 없다.]
75. Om RasajnAya namah 옴 라싸갸야 나마하
향유를, 라사를 즐기는 자[라시까와 라사갸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라시까는 아름다운 대상들을 즐긴다. 그는 맛을 즐기는 사람이다. 라사갸는 자각의 방식으로 향유를 즐긴다. 그러므로 즐기는 자 즐기는 대상 즐기는 행위의 뜨리뿌티(3인조-삼위)에서 자유롭다. 향유의 모든 행위에서, 그 자신과 그 밖의 다른 사람에게서, 바가반은 오직 하나인 참존재-참자각-참희열의 나툼만을 보았다. 바가반은 그가 사람으로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의 모든 기쁨도 즐겼다. 신은 향유이다. 라사갸로서 바가반은 신을 라사로 알았다. 라소바이샤-그는 그 자신이 라사, 즉 향유이다. 그는 앎을 즐긴다. 그는 기쁨을 안다. 그는 대상을 알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이야기의 아이들이 향유를 즐기는 좋은 부모처럼, 그는 수키 수키뜨바이다.
76. Om SoumyAya namah 옴 쏘움야야 나마하
상서로움(행복)의 구현체, 자비심의 구현체[평화로우며 달콤하며 부드러운, 그는 단지 달처럼 서늘하며 소마 주스처럼 향기로운, 선함을 퍼트리는 것만 할 수 있다.]
77. Om AtmavatE namah 옴 아뜨마바떼 나마하
항상 고요하며 참나에 거주하는 자[바가반은 오로지 아트만이다. 어떤 하나의 유일한 몸이 아니라, 그는 아트만 또는 자각으로서 모든 몸들에 동등하게 현존하는 전체의 몸들이다. 그는 모든 창조물에 참희열로서 거주하는 하나의 나누어질 수 없는 참존재-참자각이다. 참자각이 바가반의 전존재이며 본성이며 하나뿐인 거주처이다. 그는 참나를 알며 참나를 즐기며 참나이다.]
78. Om SarvAvani matasthAnam ArAdhyAya namah 옴 싸르바바니-마따스타냐마-아라댜야 나마하
전 세계의 모든 종교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 경배를 받는 자[아드바이타는 모든 신념을 통합하며 초월한다. 모든 종교의 목적이며 핵심은 하나임의 경험 즉 참나의 직접적인 깨달음이다. 바가반은 이 경험을 즐기고 표현했으며 그래서불교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과 모든 유파의 힌두교인에 의해 경배를 받는다. 그(Him)에게서 우리는 모든 신념의 마지막 완성을 발견한다.]
79. Om SarvasadguninE namah 옴 싸르바-싿구니네 나마하
모든 선한 속성들의 소유자[그는 선한 속성을 차례로 추구하지도 수행하지도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참나를 깨달았고 모든 선한 속성들이 바라지도 않는 그에게 떼를 지어 모였다. 나쁜 속성들은 몸-마음 동일시로부터 일어난다. 자각과 동일시하는 것은 모든 나쁜 속성들을 흩어버리고 모든 선한 속성들을 가져온다. 자각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그의 타고난 본래의 영광으로 모든 다이비끄 자질과 모든 신성과 상서로운 속성들을 가진다.]
80. Om AtmArAmAya namah 옴 아뜨마-라마야 나마하
참나에서 기뻐하는 자[기타는 그의 희열이 아뜨마라띠, 아뜨마뜨르쁘따, 아뜨마싼뚜쒸따로서 참나에 있는 자를 칭송한다. 바가반은 니르비까라, 니또빠산따였으며 변함 없이 항상 고요했다. 왜냐하면 그는 희열 만족 자각의 순수에서 기뻐했기 때문이다.]

81. Om MahAbhAgAya namah 옴 마하-바가야 나마하
가장 고결한 속성들을 주는 자[에고가 없는 자는 모든 선함과 위대함이 거주하는 곳이다.]
82. Om MAtru mukti vidhAyakAya namah 옴 마뜨르-무끄띠-비하야까야 나마하
어머니의 해방을 정하는 자[어떤 면에서 이것이 108 이름들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하다. 전기적으로, 인간 역사의 한 사건으로서, 1922년 5월 19일(바이사카 바훌라 나바미)에 일어났던 일은 1896년 7월에 있었던 위대한 깨달음 다음으로 중요성을 갖는다. 어머니 알라감마는 마침내 1916년에 바가반과함께 있기 위해 왔다. 그리고 스칸다스라맘에서 그와 헌신자들에게 사랑의 봉사를 하는 이 6년 동안, 그녀는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연결을 회복시켰다. 마지막 날에 그녀가 누워 죽어가고 있었을 때, 바가반은 내내 그녀 옆에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숨을 내쉬는 가슴에, 그의 왼손은 머리 위에 있었다. 어떤 헌신자들은 라마나마 찬팅을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베다를 암송하고 있었다. 바가반의 친밀한 접촉에 의해 신성하게 된 그런 성스러운 분위기 속에 그녀는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숨을 쉬었다. 그때가 저녁 8시였으며 바가반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새와 같이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보였으며 어머니에 대한 그의 책임으로부터 풀려났다. (그 당시에 망고 나무 동굴에서 살고 있던) 꺄뱌깐타 가마파티 무니는 그때 스칸다스라맘에 있었고 그는 그녀가 그녀 아들의 은총에 의해 해방을 얻었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몸은 화장되지 않고 묻혀졌다. “해방-목샤”를 얻기와, 주기는 참존재-참자각-참희열의 최초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한 전통적인 관계이다. 그의 어머니에게 해방을 줄때, 바가반은 쉬바, 즉 므르튠자야, 죽음의 정복자 역할을 하였다. 어머니의 사마디 장소 위에 규칙에 적합한 사원의 상서로운 역활은 바가반의 최고의 은총에 대한 견고한 증거이다. 그리고 또, 마뜨루는 ‘소’를 의미한다. 그 이름은 또한 소 락쉬미에게 부여된 은총을 말한다. 그 소에 관해 데바라자 무다리아르가 지은 감동적인 작은 소책자가 있다. 어머니와 아이의 서로 간의 사랑처럼, 소와 송아지 관계는 구체적인 사실이며 더욱이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랑은 자연계와 초자연계 사이에, 시간과 시간 없은 사이에 살아 있는 연결이다. 또한 마뚜루는 측량하는자, 계산하는 자, 아는 자를 의미하며 지바 개별적 영혼을 말한다. 바가반의 은총과 해방의 선물은 사랑으로 그를 향해 돌아서거나 그의 사랑에 일생을 맡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83. Om VinatAya namah 옴 비나따야 나마하
얌전하고 겸손한 사람[바가반은 최고의 겸손을 가르쳤고 늘 행했다. 무루가나르는 “가장 유순한 것보다 더 유순하게, 유순함을 통하여 신(the Supreme)은 그의 참된 지고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84. Om VinutAya namah 옴 비누따야 나마하
숭배되는 사람[그래서 유순함을 통하여 그의 지고를 나타내는 그는 모두에 의해 숭배되어진다. “띠루바차캄”에 있는 쉬바 푸라남의 마지막 줄에 쉬바의 발에 숭배로 머리 숙이는 저들은 모두에 의해 높여진다라는 글이 있다.]
85. Om ViprAya namah 옴 비쁘라야 나마하
참된 브라마나[브라마나 스와미로 불렸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쿠마라, 즉 참된 브라마나, 참실재를 보는 자와 같았다.]
86. Om MunindrAya namah 옴 무닌드라야 나마하
무니스의 왕, 수행자들 가운데 첫 번째인 자
87. Om PAvakojjvalAya namah 옴 빠바꼬-자발라야 나마하
갸나의 빛나는 불꽃[그의 마지막 지구의 거처에 잘 정착한 바가반은 바람 없는 곳에 불꽃처럼 끊임없이 타오르며 96번째 이름처럼 결코 참지식에서 빗나가지 않는다. 바가반은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꽃이며 그것과 접촉하는 무엇이든지 정화시키고 그것을 연료로 변형시킨다. 이 불에 다가가는 자는 그것에 사로잡히며 불에 타는 이 끊임없는 과정의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참된 삶에서 자각은 끊임없는 불이며 행위는 단지 자각에게 먹을 것을 주며 자각이 된다. 마치 연료가 열과 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88. Om DarsanAdagha samhArinE namah 옴 다르샤나다가-쌈하리네 나마하
그의 바로 그 보기(sight)가 불순함을 파괴하는 자[악은 빛 앞에 어둠처럼 그의 현존에서 달아난다.
89. Om Mounena SwAtma bodhakAya namah 옴 마우네나 쓰바뜨마-보드까야 나마하
침묵을 통해 참나를 드러내는 자[궁극의 참진리는 생각과 언어를 초월하며 “가르쳐”질 수 없다. 옛날의 다크쉬나무르티처럼 바가반은 침묵으로 형언할 수 없는 참진리를 드러낸다.]
90. Om HruchchAntikara sAnnidhyAya namah 옴 흐리찬티-까라-산니댜야 나마하
그의 바로 그 현존이 내적 평화를 가져오는 자[에고-마음이 고요할 때 우리의 영원한 존재인 자각이 심오한 희열적 평화로서 영적 심장에서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들 아이들 새들과 모든 동물들은 바가반의 현존에서 그들의 가장 깊은 심장에서 이 평화를 느꼈다. 그의 바로 그 현존은 그의 주위의 모두에게 이 지고의 평화를 퍼트린다.]

91. Om SmaranAd bandha machakAya namah 옴 쓰마라나드-반다-모짜까야 나마하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오게 하는 바로 그 생각[아루나찰라에 대하여 고대 시대부터 주장되었던 것이 바가반 자신에게조차 더 잘 적용된다. 아루나찰라에 대한 생각과 이름은 이 젊은이에게 해방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전통은 이 실재의 구체적인 인간 개인에게 새롭게 하는 힘으로 살아있다. 쉬바라는 빛 기둥이 성스러운 언덕에서 얼어 있듯이 쉬바와 언덕(the Hill)은 라마나라는 인간 형상의 신성으로 구체화되었다. 쉬바 아루나찰라 그리고 라마나는 하나의 유일한 참실재, 그의 본성이 영원한 희열인 순수한 참자각의 세 가지 현저한 나툼들(신화적, 지리학적 그리고 역사적)이다.
92. Om Antastimira chandAmsave namah 옴 안따-스띠미라-짠담샤베 나마하
내적 어둠을 몰아내는 빛나는 태양[하늘에 있는 태양, 우리가 아는 가장 밝은 대상은 단지 내적 자각의 상징이다. 쉬바-라마나는 분리된 에고라 불리는 어둠이 직면할 수 없는 순수한 참자각의 그런 태양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인 자각이다.” 무지와 내적 어둠은 참나를 몸들과 대상들로 잘못 동일시 한 것이다.
93. Om SamsArArnava tArakAya namah 옴 쌈사라르나바-따라까야 나마하
우리를 삼사라의 바다 너머로 데려가는 자[현상적 존재라는 깊고 사나운 바다와 싸우는 저들에게 바가반은 준비된 그리고 구해 줄 수 있는 뱃사공으로서 다가오며 우리를 또 다른 해변으로 안전하게 데려간다.]
94. Om Sanadrisa stuti drashtrE namah 옴 쇼나-드리샤 스뚜띠-드라스뜨레 나마하
아루나찰라를 기리는 다섯 개의 찬가를 보았고 표현했던 자[5개의 찬가(108 대구들 그리고 아홉 열 여덟 그리고 다섯 연들의 시)는 일반적인 시처럼 지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영적 심장에서 직접 흘러나온 것들이다. 현자들에 의해 보여진 베다의 만트라처럼 이 찬가들은 지어졌다기 보다는 오히려 보여졌다. 찬가는 바가반이 그의 헌신자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 그들의 열망을 이야기하도록 애썼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는 아무도 없었다. 이 찬가들에 어떤 장들은 자서전적이다. 그러나 많은 장들은 철학적이며 바가반의 가르침을 전한다. 찬가는 바가반과 그의 헌신자들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한다. 영원에 뿌리를 두고 시간 속에 꽃이 핀 말과 사건은 분석돼서도 안되며 갈라놓아서도 안되며 순수한 초월적인 참자각의 구원체인 바가반이든, 아니면 다른 창조물들과 완전히 동일한 관계로 살고 있는 선하고 순수한 인간 존재의 덕분으로 여겨져서도 안된다. 드라쉬따 또는 참된 보는 자는 시간과 영원, ‘타인’과 자신,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결합이다. 그의 말과 행위는 이 결합을 나타낸다. 다섯 찬가는 이 빛 즉 베다의 찬가와 비교할 수 있는 신비주의적인 언급으로서 연구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95. Om HArdavidya prakAsakaya namah 옴 하르다-비댜-쁘라까샤까야 나마하
영적 심장의 빛을 드러내는 자, 내적 참자각을 드러내는 자[바로 그 고대 시대부터, 내적인 빛 푸루샤 또는 참사람, 영적 심장으로서 그리고 그 안에 빛나는 “나.나-I, I”는 삿-칫-아난다, 참존재-참자각-참희열로서 동일시 되어왔다. 그러나 가르침이 정확하게 이해되지도 않았고 널리 가르쳐지지도 실제로 적용되지도 않았다. 라마나 기타, 40편의 시들에 대한 부가물 그리고 많은 담화에서 바가반은 영적 심장, 참존재-참자각-참희열 그리고 나(I)는 하나인 유일한 참실재을 나타내는 3가지 개념이라는 가르침을 명백하고 단순하게 잘 인식시켰다. 바가반은 이 비댜 즉 나(I)라는 스푸루티와 참존재-참자각-참희열의 자리인 영적 심장의 동일성을 가르치는 위대하며 성공한 스승이다.]
96. Om Avichyuta nija prajnAya namah 옴 아비쭈따-니자쁘라갸야 나마하
참나-자각에서 결코 빗나가지 않는 자[절대적 자각인 아버지 쉬바와 세상과 만나고 관계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르가는 실질적으로 하나이다. 스칸다는 참나-자각에서 빗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유일한 참자각을 더욱더 즐기기 위해 다른 사람과 그것을 나눈다. 절대적인 참자각은 모든 범주 너머에 있다. 그것은 모든 초월적인 아난다이다. 상대적 자각은 자각의 자각, 상호관계의 기쁨, 동요, 움직임, 파문이다. 파문 움직임 상대성은 단지 나타남일 뿐이다. 그것은 발리를 위해서만 그리고 그녀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 발리는 신성인 데바세나의 인간적 나툼일 뿐이다. 마치 무루가가 수브라마얌의 인간적 나툼이 듯이. 메이는 외적 진리 또는 몸이다. 마치 운마이가 내적 진리 또는 영혼이 듯이. 아버지 어머니 아이 스승 마스터 친구 또는 친척처럼 우리의 눈앞에 움직이는 보이는 살아 있는 몸이 있었다. 이 몸, 이 메이는 바가반에 의해 세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매개체로서 사용되었다. 모든 이것은 모든 존재들 안에 자리한 모든 아트만인 “나,나-I, I"로서 그의 니자 프라갸, 즉 그의 참나-자각을 빗나가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경험하고 수행하는 것이다.(바가바다 기타 6장 20절) 바가반은존재하며 모든 인류와 모든 세상의 심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세상은 존재했었고 그(Him)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몸만이 존재했었다. 우주적인 것은 우리가 그런 나툼에서 우리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참나를 만날 때 우리 각자에게 독특한 소유물로서 이용될 수 있다. 바가반은 우리 모두와 온 세상을 그 자신으로 안다. 헌신자는 바가반 안에서 그 자신의 참나를 만난다.
97. Om Naisargika mahA tapasE namah 옴 나이사르기까-마하-따빠세 나마하
순수한 참자각으로 자연적으로 앞을 향해 빛나는 자, 그의 바로 그 본성에 의해 위대한 타파스비.[바가반은 의식적으로 타파스를 수행하지 않았다. 마치 태양이 광선을 방사하기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우파데사 사라의 마지막 연이 선언하는 것처럼, 에고 없이 사는 것은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타파스-고행이다. 바가반은 에고 없이 그리고 생각 없이 그때처럼 지금도, 영원한 나(I)로서 빛난다. 스티따쁘라갸 즉 참나-자각에 세워져 있는 자, 그는 그의 단지 현존만으로 세상을 축복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몸이 더 이상 없을 때조차도 계속된다. 우리가 이 푸자에서 간청하는 것은 바로 이 현존이다.
98. Om Kamandalu dharAya namah 옴 까만달루-다라야 나마하
물 주전자를 가지고 있는 자[까만달루는 순수, 간소, 그리고 확고함의 상징이다. 물은 그의 눈으로부터 은총처럼 그릇으로 흐른다. 조금도 틀리지 않게 그는 그가 선택한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시원하고 깨끗하게 하는 물을 쏟아 붓는다.]
99. Om subhra koupina vasanAya namah 옴 슈브라-까우삐나-바사나야 나마하
순수한 흰 카우피나를 입고 있는 자[물 주전자와 깨끗한 흰 카우피나는 최고의 간소함의 표시이다. 인간 존재의 가장 노골적인 필수품들, 그들은 포기자는 없어도 무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이 남자, 우리가 아는 가장 현명하고 행복한 남자는 몸, 물 주전자, 그리고 한조각의 천 이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
100.Om GuhAya namah 옴 구하야 나마하
수브라마니야, 심장 동굴에 거주하는 자, [40편의 시들에 대한 부가불 중 20번째 것과 비교하라. 영적 심장-연꽃에 거주하여 빛나고 있는 주님(the Lord)은 구헤사(구하, 주님 또는 동굴의 주님)로 숭배된다. 계속된 노력에 의해 “나는 그 구헤사이다 Iam that Guhesa"라는 확신은 너의 몸 안에 ‘나(I)'라는 감각만큼 확고해진다. 그리고 너는 그 주님이 되며 ’사람은 몸이다‘라는 잘못된 관념은 태양 앞에 어둠처럼 사라질 것이다.]

101. Om DandapAnayE namah 옴 단다빠나에 나마하
지혜의 지팡이를 휘두르는 자[수브라마냐는 무지의 악마을 물리치기위해 이 지팡이를 사용한다.
102. Om KrupAparnAya namah 옴 끼빠-뿌르나야 나마하
은총이 가득한 자[은총으로 그는 전 우주에 퍼져있다.]
103. Om Bhavaroga bhishagvarAya namah 옴 바바로가-비사그-바라야 나마하
모든 질병과 불만족의 뿌리의 원인인 에고를 부수는 최고의 의사[그의 현상적 존재를 실재라고 오인하고 있는 이 질병은 에고를 부수는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치유된다.]
104. Om SkandAya namah 옴 스깐다야 나마하
쉬바의 지상의 나툼인 쿠마라[영적 심장에서 “나, 나 I, I"의 떨림인 스푸라나는 지상에서 접촉할 수있고 활동하는 신이며 쉬바의 초월적이며 접촉할 수 없는 태양의 광선, 즉 스칸다이다.]
105. Om DevatamAya namah 옴 데바따마야 나마하
최고의 신, 최상의(Supreme) 신[신(the supreme)은 태양처럼 어제와 내일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접촉할 수 있다. 오늘 아침의 매일 일상적인 이 신은 우리와 세상에 내재해있다. 데렉 네빌의 시 ‘산길 (1975년 4월)’을 참조하라. '나는 하늘에 있는 신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창조의 일부분으로 있는 마찬가지로 지옥에 있는 그런 신은 갖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때로 더럽혀진 신을 원한다. 석탄을 잘라내며 힘든 일로 이마 위에 땀이 반짝 반짝 빛나는 사람들의 때로 더럽혀진 그런 신을 원한다. 나는 도시의 먼지로 얼룩진 신을 원한다. 토관들 사이로 완전히 검댕이로 뒤덮인 거기에 있는 신을 원한다. 나는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을 거절하는 하늘과 신을 원한다. 인간이 그들의 탐욕과 무지 뒤에 있는 일상의 영광을 보게 될 때 까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거절하는 하늘과 신을 원한다. 오, 그는 가지 위에 새들과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늘사이로, 도시들의 어두운 밤사이로, 세속적인 것들 사이로, 그리고 죽은 자들 사이로 거기에 나타날 것이다. 그때, 그때 그는 어둡고 자실이 닫혀진 영혼들의 사람들 속에 숨겨진 보석처럼 기다릴 것이다. 마침내, 설교단로부터 그리고 신자석으로부터 교파와 신념으로부터 연도와 단체로부터자유와진다. 더 이상 우리가 찾아다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한 것은 여기, 평범한 땅에 평범한 방식으로 모든 심장에 누워있으며 모든 생명의 주인인 매일 매일 일상의 신(God)이다.'
106. Om AmartyAya namah 옴 아마르따야 나마하
불멸하는 자[의식적으로 영원한 참자각과 동일시된 사람은 죽는 몸이 아니다. 불멸의 영혼은 우리의 각자 안에 “나,나-I, I"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다. 결코 그것을 잊지 않는 바가반을 생각하므로써우리는 그의 불멸을 나누어 갖는다.
107.Om SenAnye namah 옴 쎄난예 나마하
군대의 총 사령관[스칸다는 잠재된 그리고 드러난 에고를 갖고 있는 악한 경향성을 가진 악마를 물리치는 신성한 군대의 주인이다. 참나가 에고를 파괴할 때 전쟁에서 승리한다.]
108. Om PurushottamAya namah 옴 프루쇼따마야 나마하
최고의 참사람[바가반은 모든 사람들안에 탁월한 자각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자각으로서 모든 사람을 하나인 일상적인 존재로 일치시키는 푸르솟타마이다. 참자각-참희열, 위대한 신 쉬바,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산 아루나찰라, 모든 인간의 영적 심장에서 “나, 나”로서 빛나고 있는 순수한 자각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인 푸루샤 유일한 푸루샤 즉 가장 영광스러운 비부티이며 우리시대에 슈리 라마나로 나타나는 그 푸루샤의 이름들과 형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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